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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최근 국내외 정세 관련 생각해 볼 칼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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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해 볼 문제 - 국내

 

[김지석 칼럼] 아직 첫 고비도 못 넘은 ‘시민혁명’

등록 :2016-11-23 17:07수정 :2016-11-23

 

김지석
논설위원

세상이 어지럽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늘 그랬지만 요즘 더하다. 지금의 최대 현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실제로 이 두 사안은 역사의 큰 흐름에서 많은 것을 함축한다.

파시즘 성향의 대중선동가인 트럼프의 부상은 세계사의 세 가지 큰 사이클이 끝나는 교차점과 맞물린다. 첫째는 1970년대 말부터 지구촌 경제를 주도한 신자유주의의 쇠퇴다. 신자유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변화를 강요받았으나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국제적 양극화와 금융자본의 횡포다. 트럼프는 인종주의를 활용해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흡수했다. 금융자본과 손잡고 부동산 재벌이 된 트럼프가 개혁적인 모습을 보일지는 의문이지만 기존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둘째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 통해 형성된 미국 패권의 동요다. 조지 부시 공화당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뒤이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패권 질서의 점진적 재편을 꾀했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라는 이름으로 급진적 재편을 얘기한다. 그의 주장은 현실적이면서도 조악하다. 앞으로 지구촌 여러 곳에서 다극 구도의 양상이 이전보다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미국의 질서 있는 퇴각을 뜻하는 건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미국의 일방주의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셋째는 200년 이상 지속된 서구 중심 질서의 퇴조다. 그 맞은편엔 아시아가 있다. 지금은 중국이 아시아의 부상을 대표하지만 인도의 덩치가 중국만큼 커지면서 절정에 이를 것이다. 트럼프는 좌충우돌하며 이 거대한 전환 과정의 여러 양상을 미리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지구촌의 모든 나라가 세 사이클의 전환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이후 강대국의 각축장이 돼온 우리나라는 더 그렇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철저한 규명과 이후 과정은 당연히 이들 사이클과 조응하는 내용을 갖는다.

우선 ‘87년 체제’의 종언이다. 6·10 민주항쟁으로 성립된 87년 체제는 군부의 정치 개입을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를 정착시켰으나 ‘제왕적 대통령’으로 표현되는 권위주의, 지역주의, 정치 불신(또는 과잉) 등을 온존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는 이런 부정적 측면이 누적돼 있다. 87년 체제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하강과 호응한다. 이 체제가 글로벌 신자유주의 속에서 성립하고 그와 더불어 굴러왔기 때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진단처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지난 50여년 동안 작동해온 ‘박정희 패러다임’의 파탄이기도 하다. 곧 ‘박정희-박근혜 체제’라는 장기 사이클이 밑바닥에 이르렀다. 이 체제의 핵심은 국가-재벌 동맹이 노동과 시민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이 체제가 작동돼온 배경에는 강고한 냉전 이데올로기가 있다. 미국의 패권이 이 체제와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미국 패권의 동요는 이 체제의 몰락과 연동된다.

근대 초기 이후 지속돼온 외세(특히 미국과 일본) 의존 구조는 최근 상황의 배경을 이루는 더 긴 사이클이다. 이 구조는 서구 중심 질서의 동요와 맞물려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부쩍 심해진 대미 외교·안보 종속이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을 통해 시도하려는 친일·독재 정당화 등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반동적인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세계사와 우리 근현대사가 맞물린 세 가지 장기 사이클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수십년의 역사가 달라질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첫째는 낡은 체제의 철저한 청산이다. 둘째는 새 사이클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도록 시민혁명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치·경제·사법·교육·문화 등 각 부문의 개혁과 개헌을 포함한 전면적인 재정비를 이뤄내야 한다.

시민혁명은 쉽지 않다. 첫 고비는 박 대통령의 퇴진이다. 이후에도 누가,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개혁을 밀고 갈지를 놓고 여러 난관과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역사적 책임에 대한 인식과 연대 정신이 중요하다. 촛불시위로 표현되는 국민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동력의 근원이다. 당장은 첫 고비를 제대로 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길게 내다보되 차근차근 나아갈 때다.

j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1645.html#csidx78fd0fe80b7f7a3b1d153305b67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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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인물 정치를 넘어서 / 김현경

등록 :2016-11-23 18:27수정 :2016-11-23 20:54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정의당과 국민의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 일부도 탄핵 의지를 밝혔으니, 이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정족수를 채우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탄핵시계’가 빨라짐에 따라 국민들의 마음은 벌써 다음 대선에 가 있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두 번의 대선이 부정으로 얼룩졌고, 그렇게 뽑힌 대통령이 전혀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회의적이다. 조만간 새누리당은 친박계 핵심인물 몇몇을 정리하고 당명을 바꾸어서 다시 등장할 텐데, 그러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후회하면서 박근혜에게 투표했고, 지금 다시 박근혜를 뽑은 것을 후회하는 중인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은 이 이름만 바뀐 새누리당이 내세우는 후보에게 한 번 더 표를 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게다가 야당 후보는 여러 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왜 실망했다느니 후회한다느니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번번이 같은 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일까? 간판이 바뀌었으니 다른 당이라고 믿는 것일까? 이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야당 쪽에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는 정당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고 계파이며 동원력이다.

그럼 이 콘크리트 지지층이 생각하는 ‘인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역설적이지만 이것은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드러난다. 차기 대선후보로 순위를 다투는 네 사람(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이재명)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그리고 세 명은 전직 변호사, 한 명은 전직 의사(소위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대선은 인구에서 다른 지방을 압도하는 경상도 표의 향방이 매우 중요한데,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출신의 출세한 사람만을 ‘인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경상도 사람들은 동창회장을 뽑는 것과 동일한 기준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아왔다(다른 지방도 비슷하지만 경상도가 특히 심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뤼크 볼탕스키는 파시스트 조직이 동창회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창회에서는 출세한 동창 몇 명이 나머지 동창들을 대표한다. 즉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사장이 노동자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며 술잔을 부딪친다 해도) 같은 계급에 속하지 않으며,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들의 유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함께 먹던 음식같이 상징적인 것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사람이 아니라 식성이 비슷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재래시장으로 달려가서 어묵을 먹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소탈함’을 과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공한 동창은 이렇듯 다른 동창들에게 자기가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았음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주말에는 촛불집회에 가야 한다. 이번에는 300만이 모일 거라고 한다. 87년 민주항쟁을 떠올리며 감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기쁘지 않다. 30년째 우리가 제자리를 맴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동창회의 정치에서 벗어나, 우리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지도자를 갖게 될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1679.html#csidxb2586b51df933c394d373687525350b

 

2. 생각해 볼 문제 - 국외

 

[시민편집인의 눈] 트럼프 타워와 청와대, 그리고 대중이 원하는 정치/ 김예란

등록 :2016-11-23 20:11수정 :2016-11-24 00:00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행여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건 우주의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수십억 평범한 지구인 중의 한 명인 나였기에, 막상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니 무엇이 그를 미국 대통령으로 이끌었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무릇 세상일에는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고 깊은 이유와 맥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 트럼프주의의 대중적 연원

왜, 어떻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까? 트럼프의 유세 연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정치적으로 타락한 엘리트 계급 대신 우리가 통치하는 미국.” 미국인들은 성차별, 인종주의, 탐욕 등 갖가지 도덕적인 결함을 지녔지만 적어도 정치적으로 타락한 엘리트 계급에서 벗어나 있는 개인을 선택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날 저명한 정치평론가 나오미 클라인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트럼프 승리의 핵심 요인은 신자유주의,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엘리트 신자유주의’의 해악에 있다. 클라인의 표현을 따르면, 트럼프는 ‘모든 게 지옥이다’라고 화낸다. 반면 클린턴은 ‘모든 게 잘되고 있다’며 확신에 넘친다. 현실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듯이, 모든 게 지옥처럼 엉망이다. 고로 사람들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의 중핵적인 수혜자인 클린턴의 위선 대신 현실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적나라하게 대변해주는 트럼프를 선호한다.

물론 트럼프가 그간 불이익을 받아왔던 백인-노동자 계급에게 잃어버린 땅을 되돌려 주고 그들의 자부심과 희망을 되살려 주리라는 맹신, 인종적 폐쇄성을 주장하면서 그간의 세계화의 흐름이 미국사회에 가져다 준 부와 이점을 부인하는 이중성, 백인 노동자뿐 아니라 더 많은 약자들이 받게 될 차별과 고통에 대한 묵인 등, 많은 지점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착오를 범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승리를 오로지 배운 것 없고 가난하며 오기에 찬 백인 남성 노동자들의 복수로 치부하는 해석은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다. 트럼프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단순한 변덕이나 착각이기보다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 모순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 문제는 민주주의다

<한겨레>는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트럼프 당선 소식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여러 관점에서 전하고 분석했다. ‘미국까지 덮친 반세계화 해일 ··· 국제질서 대격변 예고’(11월10일치)에서는 트럼프 승리를 ‘반세계화 우파 포퓰리즘이 해일이 되어 미국까지 덮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적인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되었지만, 그 대응으로 오히려 “극히 퇴행적인 우파 포퓰리즘의 기승”이 야기된 것으로 설명되었다. 또한 이는 단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등의 사건들에서 나타나는 전 세계적인 우경화 양상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 미국의 기성 엘리트, 주요 동맹국 등의 갈등과 이해관계 국면에 따라 야기될 지정학적 위기가 예측되었다.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그러나 이렇게 원인과 향후 전망을 입체적으로 조망한 기사들과 더불어, 국내 선거 기사에서도 빈번히 지적되는 현상이기도 하듯이, 미 대통령 선거를 후보자 간 경쟁이나 지역·인종·성 등의 범주에 따른 정체성 집단 간의 과열된 갈등 현상으로 틀 짓는 경향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민주당파와 공화당파 사이의 선거 전략의 비교로 단순화되거나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 분극으로 묘사되는 식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미치게 될 영향을 추론하는 기사들도 아쉬움을 낳는다. 국제뉴스가 해당 지역의 국지적인 특수성에 따라 재해석되는 현상은 당연할 뿐 아니라 때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권력 체제에서 어떤 민주주의가 가능한지, 현 체제에서 소외되고 고통당하고 있는 시민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즉 ‘정치’를 고민하는 본질적 사유는 희박하다.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인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나라들에서 우경화가 심화되는 국제적인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대두하는 문제, 요컨대 ‘타락한 엘리트 계급을 여전한 민주주의의 망령으로 떠받을 것인가’아니면 ‘저들을 비난하며 성가신 약자들을 해치워주는 악인을 영웅화할 것인가’라는, 현재 각국의 시민 주체들이 보편적으로 봉착한 현실적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누락되어 있다. 대신 경제와 국방의 정책 및 외교에 관한 단기적인 추측과 협소한 전망이 주를 이룬다.

누가 트럼프와 클린턴을 찍었는지에 대한 간단한 통계를 세심히 보더라도 심층적인 접근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백인 남성 63%, 백인 여성 53%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러나 유권자 집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이 발견된다. 세대 기준으로 45세 미만 유권자의 40%가 트럼프를 지지한 데 비해 45세 이상 유권자의 53%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흑인 남성 80%가, 흑인 여성 94%가 클린턴을 지지했지만, 히스패닉계 남녀 모두 60% 이상이 클린턴을 선호했다. 더욱이 여기에는 교육 정도와 지역성과 같은 매개 요인들도 개입된다. 이제 단지 백인-남성-하위층의 둔탁한 틀만으로는 트럼프의 승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정치이념 지형과 함께 세대, 지역, 젠더 등의 범주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중첩 국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만이 이번 선거의 본질을 해명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린 상상이 가능해진다.

■ 다른 민주주의를 위한 희망

트럼프의 승리는 단순히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백인 남성의 어리석은 분노 표출이 아니다. 영국의 일간지인 <가디언>에 실린 정치 평론가 조너선 프리들런드의 해석처럼, 미국인들, 어쩌면 지구화 체제의 다중들은 지금의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으로 좌절, 분노,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는 단지 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정치인(그리고 온갖 사이비 정치인)-재벌이 결탁한 타락한 권력 체제에서 양산된 부정부패의 극단을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당선과 박근혜 대통령의 추락 사이에는 비극적인 공통성과 함께 매우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한다. 지배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미국에서는 부적합한 대통령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반면 한국에서는 부당한 대통령을 단죄하는 흐름으로 개진되고 있다. 희망이 있다면, 이 갈림길에서 싹튼다.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1713.html#csidxeef077222034bbb91bbe868321a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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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시간의 분노, 트럼프와 샌더스 / 이용인

등록 :2016-11-24 18:15수정 :2016-11-24 20:57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 자동차 ‘빅3’ 공장들이 몰려 있는 미시간주를 다녀왔다. 미시간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마지막 방화벽이었던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민주당의 요새’ 미시간을 무너뜨렸다.

‘뒷북’이었다.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에만 주목하다 놓쳤다. 그래도 백인 노동자층이 밀집된 미시간 민심을 들으며 미국 대선 과정을 복기하고 싶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버니 샌더스 지지자를 공장 앞 식당에서, 커피숍에서, 집 앞에서, 맥줏집에서 만나 길고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몇 가지 자문자답을 해본다. 우선, 샌더스 지지자들을 포함해 노동자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분노는 정당한가? 정당하다고 본다. 이들에게 ‘너희가 만든 자동차가, 텔레비전이, 세탁기가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망한 거야’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국도 1990년대 제조업 우선 정책으로 농촌이 ‘아기 울음소리 없는’ 황폐해진 지역으로 바뀌었다. 농민들이 무능하고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산업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을 강제한 국가가, 그리고 그로 인한 수혜 산업이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미국은 월가의 금융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제조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이런 모순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을 뿐이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샌더스 지지자들의 월가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항의는, 국가와 기업의 태만에 대한 경종이었고 ‘클린턴 반대’로 나타났다.

둘째, 트럼프 당선엔 미국 사회의 주인 자리를 잠식당해온 백인 우월주의 심리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렇다고 본다. 머콤 카운티의 포드자동차 공장 앞 식당에서 만난 한 트럼프 지지자는 “디트로이트 외곽은 치안이 불안해요. 가정을 보살필 남자가 없으니 애들이 문제아가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왜 남자들이 없어요’라고 되묻자 그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귓속말로 “흑인들 문화가 원래 그래요(가정을 돌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흑인을 하대하는 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통째로 뽑아버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갈등을 줄이면 최선이고, 더 커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차선이다. 미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인종 갈등이 줄었고, 그 반대의 경우엔 갈등이 증폭됐다. 소득 불평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인종 갈등이 잠잠해지기는 당분간 어렵다. 게다가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인종 갈등이란 상처에 소금까지 잔뜩 뿌려놨으니 소수 인종들의 공포감과 우월감에 빠져 있는 백인들의 배타주의는 고조될 것이다.

셋째,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유권자들의 고립주의 요구는 지속될까? 그럴 것 같다. 크라이슬러 공장 노동자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게 언제인데, 아직도 한국과 일본,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며 경찰국가 역할을 해야 하느냐”며 “세상은 변했다. 이제 미국인들도 미국을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남의 나라 문제는 신경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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