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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의 제도적 반민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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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미국의 제도적 반민주성 / 강정구

등록 : 2021-01-11 14:55 수정 : 2021-01-12 02:43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

강정구 ㅣ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2021년 새해를 맞아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회 난입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실체가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돌연변이 현상에 불과한가? 아니면 구조적 및 제도적 표출의 일면인가?

 

흔히들 미국을 민주, 인권, 선진의 표본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특히 이곳 남한 땅에서는, 이에 홀려 ‘태극기 부대’가 성조기를 뒤흔들어왔고, 수없이 많은 사대주의자들은 용미(龍美)어천가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왔다.

 

이제 단순히 대의민주제와 3권 분립이라는 간판만 걸면 그냥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고착화된 타성에서 벗어나, 민(民)이 주인이 되고 민이 통제력을 행사하는 참민주라는 기준에서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 실질적 내용을 경시하면서, 선거라는 형식이 마치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처럼 인식하는 고정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중후한 과제 이전에 미국 사회의 제도적 측면에서 두드러진 반민주성에 한정해 살펴보겠다.

 

하나,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미국 전체 유권자 다수결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주 단위 선거에서 단 1표라도 이기면 승자가 그 주 선거인단 전체의 몫을 독식하게 된다. 이러니까 힐러리나 고어의 경우처럼 전체 유권자한테 더 많은 지지를 받아도 선거인단 수에서 져 낙선하게 되는 반민주적 모순이 원천적으로 발생한다.

 

둘, 하원과 달리 일률적으로 2명의 상원을 각 주에 배정하는 상원 할당제도 자체가 다수결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4천만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캘리포니아도,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진 와이오밍(2017년, 57만9315명 추계)도 각기 2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 약 2천만명을 대표한다면 와이오밍 상원의원은 약 29만명을 대표하는 꼴이다. 물론 연방국가로 출범한 미국의 역사성을 반영한다고 강변하지만, 이미 200년 가까운 역사가 흘렀고 더구나 주 상원의원도 아닌 연방국가의 일을 다루는 상원의원 선출에서 다수결의 원칙 위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셋, 상·하원 상임위원장 승자독식 배정의 반민주성이다. 비례대표제 없이 오로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자체가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회 상임위원장까지 승자독식을 적용하는 것은 절대다수나 거의 반수 이상의 유권자를 더더욱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게 만드는 반민주성을 띤다.

 

넷, 참정권 제한 문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권자는 응당 투표할 권리를 가지지만, 미국에서는 사전등록을 마쳐야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애초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민자, 육체노동자, 시골 거주자, 일용노동자 등을 ‘합법적’으로 배제하고 축소하려는 반민주적 발상으로 출범했다. 민주주의 표본으로 자부하면서도 아직도 이를 그대로 둔 채 여전히 민주성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다섯, 선거공영제 없는 금권선거의 극치다. 개인이 연방선거 후보 개인과 정당에 낼 수 있는 기부금 상한선이 있었지만 2014년 연방최고법원은 상한선을 폐지시켰다. 나아가 기업 등은 ‘슈퍼정치행동위원회’에 무제한 정치헌금을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책임정치센터(CRP)는 이번 대선과 상·하원 선거비용을 140억달러(대선 66억, 의회 70억)로 추산했다. 이는 2016년 65억과 2012년 62억을 합친 금액을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정경유착 때문에 대통령 후보 샌더스가 지적한 부자 3명이 하위소득자 50%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고 있다는 극단적 경제불평등 문제에는 속수무책이 되고 있다. 곧, 민의 통제력이나 주인 됨이 발휘될 공간은 구조적으로 쇠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결과 미국 사회는 계층의 고착화라는 ‘신분사회’로 전락하고 있고, 이에 좌절한 젊은이들은 이의 해소에 무용지물인 미국식 민주주의 자체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 일부는 트럼프식 포퓰리즘에 빠지고 있다. 이러니 미래의 민주주의 전망 또한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만약 미국이 민이 주인이 되고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참민주성이 좀 더 높았더라면, 1월8일 현재 코로나 확진이 2185만7616명, 사망이 36만9990명이라는 경천동지할 참상까지는 설마 가지 않았을 테다. 참민주주의야말로 우리 모두의 구체적 삶과 직결되는 절박한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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