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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갈퉁 교수와의 대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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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담은 한겨레(5월 16일)에 실렸는데 지면관계상 일부가 빠져서 전문을 이재봉교수에 부탁해 여기에 싣는다.(평화통일연구소) 
 
 
 
해외 석학 인터뷰: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 교수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 평화연구소장)
 
한겨레 창간 25주년 기념 특집 해외 석학 인터뷰를 위해 지난 4월 27일 일본 쿄토로 향했다. 현대 평화학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가 거기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4월 30일 프랑스로 떠나기 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매년 7-8월 중 2주쯤 고국에서 휴가를 즐길 뿐, 12-2월엔 스페인, 3월엔 미국, 4월엔 일본, 5-6월엔 프랑스, 7-9월엔 스페인, 10-11월엔 미국에 머무르며 강연과 연구를 하고 있다. 내가 교토에 머물렀던 27-29일에도 83세의 그는 몹시 바빴다. 주말에 쇼와(昭和) 천황의 생일이 덧붙여지는 ‘골든 위크’라는 긴 연휴 기간이었지만, 그는 27일 토쿄에서 강연을 하고 28일 쿄토로 돌아와 워크숍을 가졌다. 아래는 2013년 4월 28-29일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 요즘 한반도에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면서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강연하다보면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온 외국인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갈퉁: 북한이 위협하듯 핵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이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 북한이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 이른바 ‘북핵 문제’가 제기된 지 20년이 지났다. 양자회담, 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최근의 한반도 상황을 분석하거나 평가하면서 갈등과 긴장의 근원적 배경이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갈퉁: 한국전쟁 이후 상황이 이렇게 악화한 적이 없다. 1962년 10월의 쿠바 위기가 떠오르는데 그 때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당시 쿠바는 몇 해 전 사회 혁명을 이루고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독재 체제를 가진 자부심 강한 나라였다. 그런데 미국과 몇 몇 동맹국들에 의해 제재와 배척으로 고립에 처하는 등 괴롭힘을 당하며 국가 체제에 정상적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당해왔다. 이제 50년이 넘었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평화조약과 국교정상화를 거부당하며 봉쇄와 제재를 당해왔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에 근접해서 벌이는 연례적 군사훈련에 따라 군사적 압박도 끊임없이 받아왔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소련과 중국은 남한을 인정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아직도 북한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남한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소련군과 중국군은 북한을 떠난 지 오래 됐지만, 미군은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아직 남한에 머물러 있다. 가까운 미래에 철수할 계획도 물론 없다.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한국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해 북한에 대한 본능적 증오를 지니고 있다. 특히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되고 서독에 흡수된 이후부터 남한과 함께 북한의 붕괴를 추구해왔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복전쟁을 일으키고 이번에는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쿠바 위기엔 미국, 소련, 쿠바 세 나라가 연루되었지만, 한반도 위기는 5개국이 연루되어 있다. 미국+일본 및 미국+남한 동맹이 암묵적인 중국+북한 동맹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세계 제1의 경제대국 자리를 놓고 중국과 경쟁하며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TPP)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집권 강경파들이 최근 위기를 일본이 정규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로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1910-1931-1945년에 걸친 일본의 죄를 인정하고 남북한 및 중국과 화해하려던 과거의 시도조차 물거품으로 만들며, 전쟁의 권한을 박탈한 헌법 9조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위기는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그러면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며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갈퉁: 우선 북한이 언어로든 물리적으로든 각종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자간 협상을 통해 재화를 직접 주고받는 국제적 친선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 대만, 홍콩과 마카오, 일본, 한반도, 몽골, 극동 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공동체는 중국과 북한도 포함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과 연계하여 미국 및 다른 태평양 국가들도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모든 국가들이 상호 간에 동등한 혜택을 누리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좋다. 나도 동아시아공동체를 통한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평화를 제안하는 논문을 몇 편 썼다. 이제 하나씩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북한의 위협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국교를 정상화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와 관련하여 선생이 강조해온 것 가운데 하나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언어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갈퉁: 국교 정상화나 평화협정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훌륭하다. 그러나 수단에 있어서는 좋은 점이 적고 나쁜 점이 많았다. 특히 소통하는 방법이 좋지 않다. 목표는 고수하되 수단은 바꿔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 동의한다. 그런데 평화적 해결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창의성과 인내력.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평화적 접근 방법은?
 
갈퉁: 약 5년 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공연했다. 아마 ‘필하모닉’이란 이름 때문에 북한이 초청했는지 모른다 (‘필’은 사랑을 뜻하고, ‘하모닉’은 조화를 의미한다). 1971년엔 미국 탁구팀이 베이징을 방문했는데, 이 핑퐁 외교가 미국과 중국의 국교정상화로 이어졌다. 어려운 정치 군사 문제를 예술이나 스포츠 교류를 통해 풀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뉴욕에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이 있는데 북한이 여기 소장품들을 평양에서 전시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자국의 문화를 찬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서울대와 김일성대 그리고 예일대나 콜롬비아대 (하버드대나 스탠포드대는 조금 폐쇄적인 경향이 있으니까)가 합동세미나 등을 가져보는 것도 남한-북한-미국 사이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미국이 응하지 않는다면?
 
갈퉁: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요즘 개성공단이 폐쇄될 위기에 놓여 있다. 어떻게 파국을 피할 수 있겠는가?
 
갈퉁: 안타까운 일이다. 남과 북은 먼저 해결 방안을 추구하며 협상해야 한다. 자신은 옳은데 상대가 잘못됐다든지 자신도 나쁘지만 상대는 더 나쁘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격퇴하려는 것은 전통적 방법이다.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상대가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여기서 남쪽 당국이나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금강산 관광이 끊긴 터라 유일하게 개성공단을 통해 북쪽으로 들어가는 현금 규모가 작지 않기 때문에 북쪽이 쉽게 공단을 폐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듯했다. 그러나 북쪽이 먼저 폐쇄 결정을 했다. 적어도 두 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북쪽은 돈이 부족해 배를 곯더라도 남쪽에 대해 자존심과 배짱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쪽이 개성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남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 북쪽 노동자가 53,000명 안팎이었는데 한 달 임금이 130 달러였으니 1년 수입이 8,300만 달러 정도다. 북쪽 노동자들이 중국에 파견되면 비숙련공이라도 250 달러 이상을 받는다는데 지금 1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남쪽 기업들이 중국에 비해 고용하는 노동자수도 절반 수준이고 노동자들에게 주는 월급도 절반 수준이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손해보거나 아쉬운 쪽은 북쪽이라기보다 오히려 남쪽이라는 뜻이다.
 
갈퉁: 그 사실은 나도 몰랐다.
 
이: 선생은 약 한 달간 일본에 머물러왔다. 요즘 아베 총리가 과거의 침략을 부정하며 역사 왜곡을 저지르는 한편 관료들이 대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갈퉁: 아베 내각이 초기부터 강력한 대외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평화헌법을 고치고, 역사를 다시 쓰며, 젊은이들이 일본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시키는 게 우선 목표다.
 
이: 이에 대해 일본 국민의 지지가 높다.
 
갈퉁: 맞다. 지금까지 7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아베 내각이 ‘아베노믹스 (Abenomics)’라는 이름의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초자본주의적 (hyper-capitalist)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TPP)에 합류하려 한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 일본 안보의 수호자인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다. 일본이 이 협정에 합류하면 ‘일본의 미국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고용 보장 없이 고용과 해고가 반복되고, 미국이 통제하는 회사가 늘며, 국내산 쌀, 밀, 쇠고기 등이 살아남지 못한 채 미국제품이 어느 때보다 많이 수입될 것이다. 결국 미국의 왕성한 이익 추구에 일본의 모든 게 희생되리라 생각한다. 이에 덧붙여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다. 1973년엔 73%였지만 지금은 39%에 불과하다. 미국은 128%, 호주는 237%, 영국은 73%를 기록하고 있는데, 식량의 60% 이상을 수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식품 가격이 곧 오를 것이며 임금이 오르기 전 가계에 타격을 줄 것이다. 아베 정권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불안을 조성하는 이 협정에 합류하는 대신 동아시아 이웃국가들에 합류하면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을 고쳐 중국을 포함한 관련 국가들이 평등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센카쿠 또는 다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갈퉁: 배타적 경제수역 (EEZ)이 문제인데, 일본이 국유화를 추진하는 등 특히 일본의 강경한 입장이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도 일본에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공동 소유 또는 공동 관리로 해결할 수 있다. 그 섬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나 수입을 두 나라가 5:5로 나누어 갖거나, 앞에 얘기한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이로 하여금 그 섬을 관리하거나 감독하도록 하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공동체가 4:4:2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아베 정권에서는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정권에서 협상을 시작하거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공동 소유나 공동 관리는 이미 선생이 남미에서 제안하고 중재했던 에콰도르와 페루의 분쟁 해결 방안과 같은 것 아닌가. 두 나라는 18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무려 170년 동안 영토를 둘러싸고 몇 차례 전쟁을 치렀는데, 국경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999년 서로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해온 분쟁 지역을 두 개의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비무장 평화지대로 만들었던 사례 말이다. 나는 남북 사이의 북방한계선 (NLL) 문제를 이렇게 공동 소유나 공동 관리로 풀자고 주장해왔다.
참고로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것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을 앞두고 미국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게 독도에 대한 공동 관리를 제안했었다는 사실이다. 한일협상은 박정희 정권 시절 미국의 압력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박 대통령이 1965년 와싱턴을 방문했을 때 러스크 (Rusk) 국무부장관이 협상의 조기 타결을 촉구하자, 그는 독도 문제가 두 나라 사이에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에 러스크가 한국과 일본이 독도에 공동으로 등대를 세우고 함께 이용하면서 서서히 문제를 해결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갈퉁: 처음 듣는데 유익한 정보 고맙다.
 
이: 한반도 위기가 동아시아 위기라고 했지만, 핵심은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다. 그런데 이는 주한미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자체보다 핵물질이나 핵기술이 이란이나 알카에다 등 테러세력들에게 전파되거나 확산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는 한편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이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주장해도 미국과 남한이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주한미군 때문 아니겠는가.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약해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포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과의 적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고려하여 2단계 해법을 제안해왔다. 먼저 1단계로 북한은 지금까지 개발해놓은 핵무기를 갖되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핵물질 및 핵기술을 전파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한 채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그리고 몇 년을 지내며 상호 간에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면 2단계로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남한과 비슷한 수준으로 병력과 군비를 감축하는 대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한반도와 너무 가까운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가 두렵다면, 195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려 했을 때 고려했던 것처럼 한반도 중립화를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갈퉁: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서 북미 간의 국교정상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오직 두 나라만 합의하면 된다. 평화협정은 국교정상화보다 범위가 넓다. 적어도 남한과 중국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중립화는 비동맹보다 범위가 넓고 어려운데, 중립화가 어렵다면 비동맹으로도 충분하다. 남한과 미국, 북한과 중국이 군사동맹을 해체하면 족하다는 뜻이다.
 
이: 좋다. 이제 한반도에서 벗어나 보자. 선생은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 또는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선생이 창안한 ‘구조적 폭력’과 ‘적극적 평화’라는 말은 평화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널리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구조적 폭력이나 적극적 평화는 그 개념이 너무 넓고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갈퉁: ‘구조적 폭력’이나 ‘적극적 평화’는 나의 ‘조작적 정의 (operational definition)’다. 당연히 이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 글을 얼마나 읽고 그런 비판을 하는지 의문이다.
 
이: 선생은 건강을 잘 지키고 있지만 이미 80을 넘긴 지 몇 년 됐다. 지금까지 약 150권의 책을 펴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갈퉁: 작년엔 [평화경제학], [평화수학] 등의 책을 펴냈다. 올해는 중재, 화해 등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겐 은퇴가 없다. ‘은퇴 (retire)’라는 말은 ‘다시 (re)’ ‘피곤하다 (tire)’는 말인데 난 결코 피곤해하지 않는다. 나에겐 연구만 있을 뿐이다. ‘연구 (research)’라는 말은 ‘다시 (re)’ ‘찾는다 (search)’라는 뜻인데 난 계속 찾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피곤해하지 않으며 계속 찾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다.
 
이: 은퇴와 연구에 대한 선생의 조작적 정의가 몹시 재미있다. 이제 좁게는 한겨레신문 독자들 넓게는 한국인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갈퉁: 한겨레신문 창간 배경과 정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창간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에 긍지를 갖고 더 지지해서 더 발전할 수도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해온 민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연구하면서 아무리 큰 충격 (trauma)이라도 40년이 지나면 치유된다고 주장해왔는데,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화해로, 갈등에서 조화로 나아가게 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까 말했듯 남과 북이 해결 방안을 추구하며 협상을 해야지, 자신만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해서는 화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이: 내일 출국 준비하느라 바쁠텐데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줘 고맙다.
 
(1) 갈퉁 교수 소개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는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지금은 스페인, 프랑스, 미국, 일본에서 살며 주로 중재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평화와 관련된 주제로 150권 이상의 책과 1500편 이상의 논문을 썼다. 이 가운데 40권의 책이 3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모두 130권 이상의 책이 번역되었다.
그는 1959년 오슬로에 국제평화연구소 (PRIO)를 설립하고, 1964년 평화연구저널을 창간했으며, 세계평화학회 (IPRA)를 주도적으로 창립했다. 그리고 미국, 유럽, 일본 등의 10여개 대학을 순회하며 강의하다 1993년 트랜센드 (TRANSCEND: 평화, 발전, 환경 네트워크)를 창립했으며 2003년엔 트랜센드 평화대학 (TPU)을 설립했다.
 
(2) 갈퉁 교수의 한국에 대한 관심
갈퉁 교수는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화 및 평화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울을 방문해 박정희의 군사독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가택연금에 처해 있던 김대중 (당시 재야인사)을 은밀하게 방문하기도 했다. 199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른바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악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정치인들보다 학자들이 갈등 해결에 앞장서는 게 바람직하다며 황장엽을 비롯한 북쪽 학자 2명, 이재봉을 포함한 남쪽 학자 2명을 스톡홀름평화연구소에서 초청하여 대담하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1997년 2월 황장엽이 망명함으로써 이 대담이 무산되고 그 대신 1998년 국가정보원 안가에서 갈퉁, 황장엽, 이재봉이 만나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갈퉁 교수는 1996년부터 아내의 고국인 일본에서 자신의 고국인 노르웨이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해보는 게 소원이라며 남북 사이에 철도가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3) 이재봉 교수 소개
이재봉 교수는 1991-1994년 하와이대학에서 요한 갈퉁 교수에게 평화학을 배우며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원광대학교에서 정치학과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2013년 현재 평화연구소장 겸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0년 갈퉁 교수의 책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번역 출판했으며, 2011년엔 갈퉁 교수와 공동으로 [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을 펴냈다.
 
(4) 대담 후기
갈퉁 교수는 나이 80을 넘겼지만 아직도 매우 건강하다. 식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담 사진에서 보듯, 이 교수는 긴소매셔츠에 털스웨터까지 입고 있지만 갈퉁 교수는 반소매셔츠 차림이다. 1996년 갈퉁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교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익산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이 교수는 신문 2쪽 읽고 머리가 어지럽다며 눈을 감는데 갈퉁 교수는 3시간 내내 노트북에 글을 썼다. 요즘도 유럽에서 한국이나 일본까지 15시간 안팎의 비행을 하더라도 2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하면 곧바로 책이나 컴퓨터를 잡을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한 일벌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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