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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안보법률을 보는 네가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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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9월19일 일본 참의원을 통과한 안보법률을 어떤 시각으로 바야할지를 다룬 글입니다. 일본집단자위권 행사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면서 향후 일본의 안보법률 폐기 국민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글이라 여겨 소개합니다.   


일본의 안보법률을 보는 네가지 기준

아사이 모토후미 씀(2015.09.19)/번역 성재상 평화통일연구소 이사

 

이 글은 한 잡지사의 청탁을 받아 쓴 글이다. 안보법안의 참의원 통과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9월 14일이 원고 마감일이어서 글쓰기가 솔직히 어려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여당인 자민, 공명 양당이 다수의석을 믿고 강행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그렇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이 글은 법안이 ‘성립’된 후의 주권자들이 가져야 할 인식, 자세를 중점적으로 다뤘다.(아사히 모토후미의 말)

일본 안보법률이 참의원을 통과한 9월18일은 공교롭게도 1931년에 일본이 유조호(류타오후) 사건을 일으켜서 만주사변을 시작한 날이다. 그래서 중국언론에서는 아베정권의 전쟁법 강행통과가 ‘일본이 다시 1931년과 같이 전쟁의 길을 걷는’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주권자들은 그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끈질긴 투쟁을 전개하여, 자민공명 양당의 정치를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켜 헌법 9조의 원상회복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자기비판하면서 솔직히 말하지만, 아베수상이 4월 29일 미국의회에서 안보법안을 금년 여름까지 성립시키겠다고 공언했을 때, 나는 강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국내여론 상황에 비추어 아마 그의 발언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비관적 판단에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중의원 공청회 때 자민당의 추천을 받은 학자를 포함한 참고인 3명의 헌법학자 전원이 안보법률(및 그 기초가 된 2014년 8월의 집단자위권행사를 합헌으로 한 각의결정)을 위헌으로 단정한 것을 계기로 반대운동이 급속히 고조되어 국민운동으로 성장했다. 이런 대규모 운동은 1960년의 안보투쟁 이래 처음이다.

더구나 안보투쟁은 노조, 학생운동에 의한 조직주도의 성격이 강했으나, 이번의 국민적 운동은 개인의 자발적 참가가 뒷받침되었던 점에서 일본의 민주주의에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결국, 비정치적 시민의 정치참가에 의해서만 민주주의는 비로소 민주주의의 자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운동의 방식에 대해서 적어도 다음 네 가지 문제를 제기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이번 운동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정치의 존재방식을 다시 묻고, 자민공명 양당정치에 사망선고를 내릴 정도로 주권자⋅국민의 정치의사가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첫째, 안보법률 및 그 밑에 있는 집단자위권행사의 본질에 관해서 명확한 인식을 가지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번 반대운동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안보법률의 성립에 의해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이런 불안감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 차원에서 멈추는 한, 운동은 일과성에 그칠 위험성이 크다.

2018까지 자민당 총재 임기를 확보한 아베수상은 내년(2016년)의 참의원 선거, 그리고 2017년까지 실시해야 할 중의원선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당연히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같은 군사행동을 일본에 요구해 올 것이다. 그러나 아베수상이 이 요구에 가볍게 응해 그 결과 자위대원이 생명을 잃거나 타국인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 안보법률의 전쟁법으로서의 본질이 드러나고, 국내여론이 비등하여 정권이 무너질 것은 눈에 뻔하다.

따라서 헌법개정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아베수상으로서는 안전운전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참의원 및 중의원 선거까지는 ‘일본이 전쟁에 말려드는 불안’이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변하기 쉬운 국민감정에 비추어 판단하면, 전쟁에 말려들 불안감에서 안보법제에 반대해 온 많은 국민들은 안심해버릴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투표에서 또 다시 자민공명 양당정치의 계속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보법률이라는 국내법적 수용태세를 마련한 미일동맹의 본질은, 앞으로 장기에 걸쳐 NATO와 함께 미국주도의 군사적 세계지배를 확보하고 미국이 발동하는 군사력행사에 일본 자위대가 전면적으로 참가하는데 있다.

이러한 본질에 관해 명확한 인식을 가질 때만 국민적 반대운동의 에너지는 지속가능하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런 인식을 갖게 됨으로써 아베수상이 안전운전에 조심한다는 속임수에 의해 우리의 판단이 흐리게 되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 안보법제의 성립⦁불성립에 관계없이 헌법위반의 각의 결정을 무효화함으로써 제9조를 원상회복하고, 입헌주의의 근간을 옹호한다는 국민적 과제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헌법학자, 전 최고재판소 장관, 전 내각법제국 장관, 변호사를 포함한 압도적 다수의 법조관계자들이, 집단적 자위권행사를 합헌이라고 한 각의결정을 위헌이며, 무효라고 단정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폭거는 입헌주의의 근간을 짓밟는 것이고, 이러한 폭거를 감행한 정권의 존속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국민의식이 ‘전쟁에 말려드는 불안감’의 수준에 멈춰버리고, 아베수상의 위 속임수에 의해 판단을 그르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는 안보법률에 일희일비 하지말고, 오는 참의원 선거 및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공명 양당 정권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 또한 여러 정치적 고려로 움직이는 야당세력에 대해서도, 상기 각의결정을 무효화시켜 입헌주의를 단호히 옹호할 것을 약속하고 선거에 임하게끔 엄격히 감시해야한다.

 

세째 안보법률∙집단자위권행사의 국제적 의미에 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미국 주도의 국제적 군사력 행사의 사례는, 미∙소 냉전종식 뒤 현격히 증가하였다. 또 미국의 종용 밑에 유엔 및 OAU(아프리카 통일기구)등의 지역기구의 군사력행사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이 보이는 바와 같이 이런 군사력행사의 압도적 다수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기는커녕 더 심각한 사태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라크, 아프간, 리비아, 예멘, 시리아가 그렇다. 이슬람 국가(IS)의 대두도 무관하지 않다. 군사력행사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NATO의 동방확대에 의해 촉발되어 일어난 구소련 연방제국의 색깔혁명도 우크라이나에서 심각한 내전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심각한 사실은, 이러한 군사력 행사의 결과 많은 나라에서 대량의 인명 상실과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집중적 표현이 대량의 아랍 난민들의 유럽 유입문제이다. 그 충격은 유럽전체의 평화와 안정 자체를 흔들까도 모르는 에너지를 숨기고 있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한다고 미국주도의 군사력행사에 가담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가해행위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전쟁에 말려드는 불안감’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이상과 같은 국제적 의미에까지 인식을 깊게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국제적인 시각도 갖춰야한다.

 

넷째 안보법제와 집단자위권행사는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직결하는 중대한 문제다.

왜 미국이 일본에 대해 집단자위권 행사에 나서도록 강요하는가? 하나의 이유는, 미국의 국력저하라는 배경 속에서 소련 붕괴 후 미국이 유일 군사초대국으로서 세계를 군사지배하는 전략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데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지도권 아래서 동맹국들을 동원하여 세계의 갖가지 사태에 군사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일본에도 적용하는 것이 1990년대 이후의 미국의 일관된 대일전략이다. 집단자위권 행사는 1990년대 말부터 대일 요구의 기본이 되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오바마정권이 내세운 아시아재균형 전략에서 미일동맹의 중요성이 대단히 증대한 것에 있다. 이 전략 자체는 세계경제에서, 중국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경제의 비중의 비약적 확대에 대해,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참가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특히, 멀지않은 장래에 미국과 비견할 것이 예상되는 중국과의 관계는 미국의 최대 관심사이다.

경제적으로는 미중 상호의존은 이미 변경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군사적으로 미국의 권력정치적 사고는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중국을 위협하기 위해서는 미일동맹 강화가 지상과제이다.

원래 2차세계대전 이전으로의 회귀(戰前回歸) 및 군사대국화 지향이 강렬한 아베수상은, 대미 군사협력의 테두리 내에서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것의 정당화 재료로서 이용하는 것이 ‘중국 위협론’이다. 대국∙중국에 대해 위화감이 강한 국민심리에 ‘중국위협론’은 침투하기 쉽다. 따라서 안보법률∙집단자위권행사에 입각한 일본은 반드시 미∙일 대 중국의 군사적 대치구조를 만들어내게 된다.

또 하나의 긴장요인은 한반도다. 미국은 미군의 아시아 주둔을 정당화하는 재료로서 ‘북한유사’를 특별히 강조한다. 본심은 중국에 있는데 이것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을 꺼려해(그 점에서는, 미일 간에 온도차가 있다) 대역으로 북한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더욱이 극히 위험한 것은 한미동맹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포함한 맞춤형 억제전략(tailored deterrence, 한국은 ‘적극억제’라고 한다)을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가 북한에 대한 군사력행사를 개시하면,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가 현실로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데는 한국의 요청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요청이 없는 한,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확립된 원칙이다. 아베정권에 대한 불신감이 강한 한국정부는 이 점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북한 유사’에 자동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이와 관련해서는 뒤에 평화통일연구소가 덧붙이는 글을 싣고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그러나 일본의 집단자위권행사가 한반도의 긴장을 더욱 고조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가 ‘전쟁에 말려드는 불안감’의 차원에 머물러서 안 되는 것은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이번 안보법률 반대의 국민운동은 일본정치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 끈질김이 요청되는 운동이며 따라서 자신들을 충분히 단련시켜 나가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런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 간단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헤노코(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 추진지)의 끈질긴 반대투쟁은 바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다. 우리도 이제 정부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악습과 결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끝)

 

아래는 평화통일연구소에서 덧붙이는 글입니다.
일본의 집단자위권행사를 반대하는 일본 지식인들이라 하더라도 거의가 한반도와 관련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적지 않은 인식상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아사히 모토후미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가진 훌륭한 분석가이지만 이 점에서 역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갖고 있어 미국이 일본의 참전을 요청하면 한국은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 또 일본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한국정부의 사전동의사항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9월 19일 참의원을 통과해 확정된 일본 안보법률 중의 하나인 무력공격사태 및 존립위기사태법을 보면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도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런 인식상의 한계는 집단자위권을 반대하기 위한 한일연대에서 하나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어 극복되어야 할 지점이다.(평화통일연구소의 주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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