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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기지의 현내 이전반대와 지사선거 결과_타오카 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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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기지의 현내 이전반대와 지사선거 결과

-오끼나와 미군기지가 억지력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타오카 순지(田岡俊次)/번역 성재상 (평화통일연구소 이사)

자료원문:일본의 인터넷 매체인 online DIAMOND 2014.11.27 기사

 

  미군 후테마기지를 오키나와 내(헤노코)로 이전하는데 반대하는 오나가 타케시가 2014년 11월 16일 오키나와현 지사에 당선됐다. 이로써 지사와 함께 나고시 시장도 이전 반대파가 차지하게 됐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조용히 이전계획을 추진할 것”이라며, 그 이유로 헤노코이전이 “억지력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는 미 해병대의 역할을 자세히 검증하면 억지력론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이전 반대파가 지사도 시장도 차지

 이번 오키나와지사 선거에서 전 나하시장인 오나가 타케시가 총투표수의 14퍼센트에 해당하는 10만표 가까운 큰 표차로 나카이마 히로카즈 현지사를 눌렀다. 오나가는 미 해병대 후텐마비행장의 폐쇄∙철거 및 현내이전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오나가당선자는 나카이마가 2013년 12월 27일에 행한 헤노코연안의 매립허가를 철회하는 등, 모든 수단을 써 새로운 기지건설에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카이마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지지를 얻어 2006년 지사에 당선됐고, 당초 헤노코 이전을 수용하였다. 그런데 민주당정권 하의 2010년 지사선거 때는 ‘기지 현외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2013년 12월 아베정권의 매립신청을 허가하였기 때문에 2014년 1월 10일 현의회에서 불신임안이 3/4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다. 2번의 나카이마의 배신은 오키나와현이 처한 어려운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베수상이 2013년 12월 25일에 제시한 3460억엔의 오키나와 진흥예산에 대해서 ‘유사 이래 최대예산으로 이는 신년 선물이다’(실은 1998년도의 4713억엔 등 이보다 많았던 때가 많다)라며 나카이마가 반긴 것은 돈다발 공세에 변심한 것처럼 보여 오키나와사람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였다.

 일본 정부는 ‘한번 현 지사가 승인한 것을 후임자가 철회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해저지반의 천공조사 등을 '조용히'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2014년 1월19일에는 현지 나고시에서도 기지 이전 반대파인 이나미네 스스무 시장이 큰 표차로 재선되어, 어항 내에 마련할 매립작업용 부지를 대여하지 않는 등의 저항을 시장 권한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지사가 가세하면 공사 추진은 난항이 불가피하다. 이전하는데는 설계 1년, 매립 등의 건설에 5년, 시설정비에 3년 등, 모두 9년 반이 소요되며, 총경비는 1조엔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36해병항공군(群)이 주둔하고 있는 기노완시의 후텐마비행장은 2천7백미터의 활주로를 갖고있고, MV22B(오스프레이) 24대, 대형 수송헬리콥터 CH53E 4대, 공격헬리콥터 AH1W 5대, 지휘∙연락용 헬리콥터 UH1N 4대, 연락기 UC35(세스나 사이테이션) 3대, 연락기 UC12(슈퍼킹에어) 1대가 배치되어있다. 나하에서 약 10키로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만큼, 비행장의 주위는 주택지로 개발된 까닭에 소음 민원이 많다. 2004년 8월 13일에는 대형헬리콥터 CH53D가 인접한 오키나와 국제대학 안에 추락하여 불이 났다. 여름 휴가 중이어서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으나, 탑승한 3명이 부상당했다. 또 기노완시가 기지에 의해 동서로 분단되어 소방, 구급활동 등에 지장이 있다.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면, 사고에 의한 민가피해나 소음문제는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나, 많은 오키나와사람들은 미군 점령, 강제토지수용, 미군 범죄 등으로 70년 가까이 고통을 받고, 굴욕감을 느껴 왔기 때문에 새로운 기지 건설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6년 4월 하시모토 료타로수상과 W 몬데일 주일 미국대사가 후텐마기지 이전에 합의한 지 벌써 18여년 된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아직 착공도 못하고, 정부의 목에 박힌 가시처럼 되어있는 것은, 본래 이 계획이 무리였음을 말해준다. 그 동안 일본의 재정상태는 악화되고, 정부의 총채무잔고는 1,197조엔, 정부가 가진 금융자산을 뺀 순 채무도 673조엔(GDP의 약 138%)에 달했다. 이런 재정위기 가운데, 지역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기지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 정책인지 의심스럽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의 실제 역할

 정부는 이 기지이전계획이 ‘억지력 유지에 불가결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가 실제로 억지력이 될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2013년 말에 미 해병대원 15,900여명이 있고, 그 중 약 3,200명은 이와쿠니(야마구치 현)의 제12해병항공군(群)과 후지 연습장 등에 근무하고, 오키나와에는 1만7천 명 정도다. 오키나와에는 제3해병원정군사령부 밑에 제3해병사단, 제1해병항공단, 제3해병병참군(群) 등이 주둔하고 있어, 얼핏 보기에는 상당한 전력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투부대는 제31해병 원정대뿐이다. 이 부대는 약 2,100명의 인원을 가진 부대인데 보병 1개 대대(약 800명)와 155미리 견인포(자주포 아님) 6문, 수륙양용 장갑차(25미리 기관포 또는 대전차미사일 토우 장비)6대, 수륙양용 병력 수송차 15대 등을 가진 대대상륙팀(전차는 없음), 그리고 AV8B해리어-2공격기 6대, MV22B(오스프레이)12대, 대형헬리콥터 CH53E 8대, 공격헬리콥터 AHIW 4대, 지휘∙ 연락헬리콥터 UH1N 3대를 가진 혼성 항공부대, 그들의 보급∙지원부대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보병대대는 오키나와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 본토의 제1 및 제2 해병사단 등에서 6개월 간격으로 교대로 파견되고 있다. 후텐마의 제36해병항공군은 제31해병원정대에 항공기를 보내는 모부대 역할을 한다. 오키나와의 그밖의 미해병대는 사령부이거나 병참(보급,지원)부대이다. 제31 해병원정대는 사세보를 모항으로 하는 미 해군의 강습양륙함((USS Bonhomme Richard 40,358톤) 등 양륙함 4척(이중 상시 출동가능 3척)에 승선해서, 제 7함대의 일부로서 서태평양, 인도양을 순항하고 호주에 자주 기항한다. 보병이 800명에 불과할 정도의 경장비 부대만으로는 전쟁을 할 수 없다. 상륙작전의 선봉이 되어 해안이나 항구를 확보하는 것이 제1 임무이지만, 이것은 바로 후방에 제1 및 제2 해병사단이나 육군의 사단 병력을 태운 대선단이 따라오는 경우의 이야기이고, 대함미사일이 발달, 보급된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상륙작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임무는 해외의 전란, 폭동, 천재 등의 경우에 현지거주 미국인을 구출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공항이나 항구를 확보하고, 폭도 등의 침입을 막고, 미국인들을 도심 등에서 공항이나 항만으로 장갑차나 헬리콥터로 이송하고, 수송기나 선박에 태우는 것이라면 보병 1개대대, 포 6문, 각종 장갑차 도합 21대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료품, 연료, 탄약 등은 15일분을 준비하고 있다.

 미 해병대는 1997년의 동유럽 알바니아에서의 소란, 그해 5월의 서아프리카 시에라레이온 내전 등에서 미국인 구출에 출동하고, 2010년 1월의 헤이티지진 때도 출동했으나 이때는 미국인들이 많이 숙박한 고급 호텔에서 구원활동을 했다.

 미국인 피해자가 적은 재난에도 출동하고 있다. 2004년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해안 지진, 2013년의 필리핀 레이테섬의 태풍 등 미 해병대의 행동은 신속했다. 2008년 중국 사천성 대지진때 미군은 다른 나라에 앞서 미공군의 C17대형 수송기로 구호물자를 성도로 날랐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때의 도모다치(친구)작전에서는 일본인들이 미해병대의 활동에 감사해 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펜돌톤기지로부터 교대로 와 있던 제1해병사단의 제5연대 제2대대가 당시 31해병원정대의 주력이었다. 그러나 재난시 구조나 인도적 지원활동은 동맹국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이가 나쁜 나라도 호감을 갖도록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어서, 이런 활동은 당연히 ‘억지력’과는 관계가 없다.

 

대북한 및 대중국 억지에 도움이 될까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는 먼저 북한의 핵미사일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억지력은 미군, 한국군의 항공전력, 미해군 항공모함의 탑재기, 잠수함과 해상함에서 발사하는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다. 핵무기를 북한에 사용하면 풍향에 영향을 받겠지만, 한국, 중국, 일본에도 방사성 물질이 내리고, 핵공격에 의한 오염은 북한 붕괴 후에 한국이 북한을 부흥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은 공대지미사일이나, GPS유도폭탄 등의 정밀유도무기에 의한 비핵재래식 공격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군이 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패배는 확실하며, 800명정도의 해병 1개대대나 오스프레이와 헬리콥터와 같은 부대는 핵미사일에 대한 억지력으로는 물론 될 수 없다.

 설사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하더라도, 제31해병원정대가 첨병이 되고 해병대가 중국연안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대규모 지상전에 돌입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나 자신이 1996년 후텐마기지 이전문제가 나왔을 당시, 워싱턴 교외의 해병대 사령부에서 해병대 수뇌와 상황에 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해병대의 중국상륙 작전은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자, 상대는 “Unthinkable(생각할 수 없다)은 적절한 표현이죠”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해서 내심 놀란 일이 있다.

 미국의 억지력은 약 4,700발의 핵탄두(그외에 폐기예정이 약 3,000발)에 추가해서, 세계의 여타 해군들을 모두 합쳐도 당하지 못할 절대적 우세를 가진 미 해군 그리고 질적∙ 양적으로 압도적인 미 항공전력이다. 해병대의 소부대가 오키나와에 있건, 없건 미국의 억지력에는 변화가 없다. 양륙함에 탑승해서 인도양, 서태평양을 순시하고, 때로는 이라크에서 싸우기도 한 제31해병원정대가 오키나와 방어병력이 아님은 물론이다.

 미일 양국 정부는 2012년 4월, 오키나와의 해병대원 약 9천명과 그들의 가족을 일본 국외로 이전하고, 일본은 괌 이전경비 86억달러 중에서 28억달러 한도의 재정지원을 한다는등을 공동발표하였다. 오키나와를 떠나는 9천명은 괌과 하와이로 옮기는 것 외에도 호주 북쪽해안 다윈에 순환배치되고, 오키나와에는 3천여명이 남을 것 같다. 제3해병원정군 사령부 등의 사령부는 오키나와에 남고, 기동부대인 제31해병원정대도 오키나와에 잔류한다. 전쟁이나 소란, 천재 등의 경우, 미군의 구출활동 대상이 되는 비전투원(민간인, 군인의 가족등)은 한국에 22만명, 중국에 25만명이 있다고 한다. 구출에는 초동이 중요하나, 괌에서 양륙함에 탑승하여 구출을 위해 한국, 중국의 연안까지 가는데 약 3천키로가 되고, 20노트 속력으로 3일반이 걸린다.

 사세보에서 간다면 인천이 약 700키로, 중국 상하이가 약 800키로로 1일간의 항해가 된다. 사세보에서 오키나와까지 남하해서 해병대원과 장비를 싣고 다시 북상하면 시간적으로 별로 이점은 없으나, 오스프리(항속거리 약 1천키로, 탑승군인 24명)와 대형헬리콥터 CH53E(항속거리 약 2천키로, 탑승 군인 37명)를 사용해서 인원을 해상에서 태우고, 중장비는 양륙함에 그대로 두면, 괌에서 출동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또 제31해병원정대가 양륙함으로 원양으로 나가있는 경우, 남은 오스프리 12대와 후텐마에서 이와쿠니로 옮긴 KC130공중급유 겸 수송기 15대를 이용해 재외공관을 수비할 정도의 병력은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센카쿠 유사 때 미해병대의 참가는 기대할 수 없다

 우선 동중국해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의 방어와 탈환작전에 미해병대가 참가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이 칼럼에서 몇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오바마대통령은 2014년 4월24일, 아베수상과의 회담 뒤 기자회견 때 말했듯이, 미국에게는 중국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영토문제에서 “특정 입장은 취하지 않는다”는 것, “중국 봉쇄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몇 차례나 표명하고 있다. 센카쿠열도 중 大正島, 久場島는 미일소파에 의해 미군의 폭격훈련장으로 공여되고 있어, 미국도 센카쿠열도가 미일안보조약의 적용 지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서는 “착∙상륙을 저지, 배제하는 작전은 일본자위대가 'Primary Responsibility'(일차적 책임)를 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이 “자위대가 주체적으로 실시한다”라고 얼버무리고 있긴 하나, 미군은 아무것도 안 해도 “일차적 책임은 자위대에 있다고 명기되어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 있는 문장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일가이드라인 개정협의에서도, ‘일차적 책임’ 조항을 그대로 두기로 이미 결정되어있다. 센카쿠 유사 때의 미일공동작전의 수립을 자위대가 요구할 경우 미국이 불응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이해관계상 당연한 것이며, 국제정치는 주로 이해타산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중일이 무력분쟁을 일으키면 그 사이에서 매우 곤란하게 되므로, 쌍방의 화해에 힘써왔다. 2014년 11월 10일의 중일 정상회담 전에 발표된 합의문서에서 센카쿠문제가 사실상 뒤로 미뤄지자, 미 케리 국무장관은 “미국은 마음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중일관계의 가일층의 개선을 요청했다. 중일 관계개선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중요하고, 미국이 중일정상회담의 실현을 위해 양국에게 촉구해 온 것은 확실하지만 거기에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가 도움이 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만약 후텐마에서 다시 사고가 생기면 미일동맹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으나, 현 후쿠오카공항에 가까운 쿠슈대학의 전산센터에 1968년 6월 미공군의 RF4 정찰기가 충돌한 사고나, 1972년 9월에 아쓰기기지에서 이륙한 미해병대의 RF4 정찰기가 요코하마시의 주택지에 추락해 민가 20채가 불타고 3명이 죽고 6명이 부상한 사고에도 미일안보조약은 없어지지 않았다.

 1981년 4월에 미해군의 원자력 잠수함 G 워싱턴이 동중국해에서 일본 화물선 닛쇼마루와 충돌하여 침몰시키고, 구조나 통보도 하지 않고 도주해서 승무원 15명중 2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2001년에는 하와이의 오아후섬 해역에서 미 원자력 잠수함 그린빌이 우와지마수산 고등학교의 연습선 에히메마루와 충돌, 침몰시키고 9명을 죽게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도 미해군은 군법회의를 열지 않았고 형사처벌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리에 어긋나는 예가 있음에도 미일동맹 문제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이런 예를 보면 ‘후텐마 이전이 되지 않으면 억지력을 유지할 수 없다거나 미일동맹이 날아가버린다’는 등의 주장은 오로지 미국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는 비굴한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끝)

 

(참고-타오카 순지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전 편집위원(방위담당)이며 미국 조지타운 대학 전략문제연구소(CSIS)연구원 겸 동 대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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